조선시대 마지막 영의정 총리대신 김홍집
- 역사정보
- 2019. 8. 26. 23:24
조선시대 마지막 영의정 총리대신 김홍집
현재는 정확히는 모르나 과거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았던 김홍집에 대해서 작성을 하려고합니다. 이유는 일본에게 나라가 기울져 가는 상화속에서 고군분투하였기 때문입니다.
간략하게 우리가 고등학교 때 보앗던 문제집에는 이정도로 설명을 합니다.
- 1880년 제 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갔다가 [조선책략]을 가져옴
- 미국, 영국 등 열강과의 조약 체결 실무자로 참여
- 제 1차 갑오개혁 때 군국기무처 총재 역임
- 제 2차 갑오개혁 때 박영효와 연립 내각 운영
- 단발령 등 을미개혁 추진 과정에서 실각하며 사망
그외 청일전쟁과 갑오경장, 동학 봉기 아관파천등에서 4번이나 총리대신직을 맡아서 총괄했던 정상적 관료로 아관파천이후 경무청 순사에 의해 격살된뒤 군중들로 부터 시신이 짓이겨지는 최후를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1880년 고종시절 3월에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은 빠르게 개화기를 걷고있는 일본의 신문물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체류기간동안 주일청국공사의 하여장과 참찬관 황준헌을 만나고 이때 사의조선책략의라는 책을 받았습니다. 조선책략 책의 내용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비해서 조선, 일본, 청나라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평화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귀국후에 고종에게 조선책략을 주고 책을 받은 고종은 중신들에게 검토를 하였고 이는 궁지에 몰린 국제 관계에서 탈출할수 있는 묘책이라고 생각을 했고, 조선책략 한권으로 김홍집의 입지는 강해지게 됩니다. 조선은 또 분열이 되는데 이로 급진개화파는 이내용을 지지하고 위정척사파는 개화운동을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신망과 비난둘속에 어중간한 자리에 있게 되버린 상황이 됩니다.
이 책한권으로 위정척사파의 분노를 키우게 되엇으며 유명한 영남만인소등의 사건이 있었음. 또한 김홍집은 이사건으로 인해 사직을 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탄핵상소가 많이 올라와 관직에서 물러 나게 되었음. 한때
또한 청나라의 통리아문을 모방한 통리기무아문의 외교 통상 업무를 하였으며, 국가의 외교와 군사제도등의 근대적인 개혁을 관리아는 관청이었음. 협상의 실무자로 있었으며, 흥선대원군이후 잠긴 조선이 김홍집이 정권을 잡은후 어느정도 개화기를 맞이했음.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의 사건속에서 중직을 맡으면서 승승장구를 하였음. 갑신정변은 3일천하로 끝났고 그때도 김홍집이 뒷수습을 하였고 주가는상승해서 좌의정으로 승진하고 외무독판직까지 겸직을 했다고함. 하지만 일본에게 갑신정변의 피해에 관해서 협상을 할때 슬프게 한성조약이라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였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김홍집은 역사적으로는 친일로 굉장히 안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여러 조약을 통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속에서 가혹한 임무를 받은 사람중 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한 시대의 흐름상 그의 마지막은 친러파에게 역적의 누명을 쓰고 운명을 끝내야했지만. 조금더 빨리 조선의 개화를 이끌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번 생각은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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